종착역에서

마음 챙김|2022. 1. 25. 12:15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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종착역에서

 

나이가 는다는 것은

인생의 빚이 쌓인다는 것

아내에게

자식에게

그보다 그 옛날 부모에게

덤으로 쌓인 빚 바리바리 지고서

빚진 죄인 나는 종착역에서 서성거린다

 

다시 돌아갈 수 없는 길

이미 막차는 떠나버렸고

채무자 과거가 흘겨보는 시간

떠밀려 나온 종착역

누굴 찾아왔을까

가로등만이 포도 위에 아롱진다

 

무작정 달려왔던 길

기다리는 얼굴은 보이지 않고

길을 막는 빨간불

검문 검색하는 역사 앞에

나는 너무 멀리 와 버렸구나

 

신과 대결했던 어제의 희망도

나의 마지막 밑천인 육체도

이제는 시들은 풀잎, 희망은 저 멀리

등을 돌려 떠나 버렸는데

여인아, 너는 내 술잔에

무슨 빛깔의 눈물을 채우려느냐

 

기적마저 그친 종착역에서

시효가 지난 어젯날의 차표를 들고

막차가 떠난 플랫폼에서

나는 나 홀로 전별의 손길을 흔든다

 

아 이 밤에도 시지푸스는

그 형벌의 비탈길에서

잠깐 쉬엄 쉬엄 밤하늘의 별도 보며

향기로운 땀방울로 고요히 개이고 있을까

 

- 문병란 -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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